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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아니라 경험에 몰입하다

나르사스 2019.05.21 10:50


소니 WH-1000MX3 체험단 발대식 사용기?

트렌드의 변화
1. 저는 음악/소리를 듣기 위해 기술에 집착하던 세대입니다. 5.1 채널 스피커를 사고, 케이블을 바꾸고, 스피커의 위치를 바꿔가며 좋은 소리를 찾아내기 위해 고민하던 사람이죠. 파일에 만족 못하고 DVD를 사고 블루레이를 샀습니다. 요즘은 4K 화질의 블루레이가 나온다죠? 그런데 리시버가 DTS HD를 지원하지 못하더군요. 전 이런 사실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입니다. 이런 환경에 익숙하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어떤가요? 위 내용이 무슨 이야기인지조차 잘 모릅니다. 

이건 요즘 사람들이 음악, 영화, 소리에 대한 소양/감각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닙니다. 지식이 모자라서라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저보다 더 기술에 대한 이해가 높고 수용능력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 

 

콘텐츠를 소비하는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저희 세대에게 홈 시어터를 사고 DVD, 블루레이를 수집해서 나만의 영화관을 만드는 것이 익숙하다면 요즘 세대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휴대용 기기로 간편하게 보는 것이 익숙합니다. 큰 화면과 웅장한 사운드는 극장에서 즐기는 경험일 뿐이지요.

 

여러 가지 사회적, 문화적, 기술적, 경제적인 변화로 인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법이 크게 바뀐 것입니다.

 

2. 2000년까지의 마케팅의 중심에 있던 것은 기술이었습니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2를 발매하면서 8000만 폴리곤이라는 수치를 내세웠고, 컴퓨터 CPU는 32비트, 64비트를 내세웠죠. 사람들은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제품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정말 높은 숫자가 더 좋은 경험을 시켜주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어느새 상황이 바뀝니다. IT기기를 자주 접하는 사람들이 이를 알아챈 계기는 닌텐도 DS였습니다. 수년 전에 이미 최전선에서 제대한 부품들로 이뤄진 이 게임기는 처음에는 크게 고전했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에 몰입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상황이 바뀝니다. 

 

한국에서 게임 패러다임을 바꾼 닌텐도 DS 


이 게임기가 내세운 <매일매일 두뇌 트레이닝>은 당시 일본 시장에서 20만 장 팔리면 대박(관계자 왈)이던 시절, 무려 1700만 장을 팔았습니다. 기존에 게임을 하지 않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시한 것이 원인이었죠. 이렇게 닌텐도는 굳이 고사양 CPU를 쓰지 않아도 좋은 고객 경험만 제공할 수 있다면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 중시의 흐름은 점점 확대됩니다. 이를 대한민국이 깨달은 시기는 바로 2009년 아이폰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였을 겁니다. 기존의 제품과는 전혀 다른 생태계를 평정하고 온 블랙 배스, 하지만 국내 경쟁사들은 이 블랙 배스와 싸우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고성능 CPU, 고급 액정, 상대방에 없는 첨단 기능을 중심으로 아이폰의 약점을 공략했죠. 

문제는 한국에 상륙한 아이폰을 접한 사람에게 아이폰의 약점은 가격 외에는 없었다는 겁니다. 앱을 자유자재로 설치해서 전화도 걸고 음악도 듣고 영상도 마음대로 볼 수 있고 책도 볼 수 있는 새로운 경험에 사람들은 몰입해 버렸죠. 결국 한국은 스마트폰에 점령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사람들과 연결되고 콘텐츠를 소비하게 되었죠. 

이는 기술에 의존하던 국내 기업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물론 성능을 위해서는 단일 기기를 사용하는 게 맞겠죠. 하지만 사용자 경험이라면 이야기가 틀립니다. 

 

기술에 집착하면 이런 간소화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익숙했던 스펙과 기술 위주의 마케팅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반증이 되었습니다. 소비자들은 천천히 바뀌고 있었죠. 

 

스펙과 기술이 아니라 어떤 경험으로 몰입하게 해 줄 것인가. 

 

로 말이죠. 이는 삼성의 스마트폰이 다양한 편의 기능을, LG의 스마트폰이 DAC로 음악 감상의 경험에 추진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소니라는 기업
1. 제가 소니를 접한 건 80년대였습니다. 모 유명기업으로 이직한 어머니를 위해 저 같은 IT마니아였던 외삼촌이 음악을 사랑하던 어머니를 위해 선물한 제품이죠. 하지만 세상이 다 그렇듯, 이 제품은 똬리를 틀고 있던 제게 떨어졌습니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거든요. 

제가 저걸 한 10년 끼고 다녔을 겁니다. 어머니 죄송혀유. 


사람들에게 소니는 기술의 상징이었습니다. 2000년도 초까지 부단한 연구개발을 위해 실험적인 제품을 만들었죠. 이는 세계의 기술혁신을 주도한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이 자신이 뭘 주도했는지 잊어버렸던 200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소니가 글로벌 시장에 우뚝 서자, 이데이 회장은 여느 실패한 CEO들이 그랬듯 R&D 예산을 팍 깎아버리죠. 결국 이때부터는 있는 기술을 다듬어나가는 회사가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이후 여러 가지 복잡한 사건을 거치면서 소니는 부채덩어리의 회사로 굴러 떨어지죠.  

이 부채를 부채질한 하워드 스트링어의 뒤를 이어 취임한 히라이 카즈오 회장은 대대적인 칼질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소니의 자긍심이라 불리는 부분을 모두 잘라내고 실력만 생각되는 부분만 남겨놓는 대수술이었죠.  

주주와 사원 그리고 시장에서 외면받던 그의 정책, 하지만 결국은 그가 옳았습니다. 소니는 2017년 그 천문학적인 부채를 모두 정리하고  흑자기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히라이 씨는 아름답게 은퇴를 하지요.  

2. 이 대대적인 수술을 통해 소니는 경쟁력 있는 부분만을 갖춘 회사가 됩니다. 그리고 그중에 살아남은 게 음향기기 산업입니다. 그런데 요렇게 적어놓으면 그냥 소니의 음향기기가 꾸준히 이어졌구나 싶겠죠. 그런데 아닙니다. 실은 굉장히 오랜 과정을 거쳐 변화했습니다. 

 

기술 중심에서 소비자 경험 중심으로 말이지요. 

 

혹자는 소니의 이어폰/헤드폰 제품에 강렬한 개성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건 오해입니다. 확실히 베어 다이내믹같이 아래를 깊숙이 울려 치는 저음이라던가, 젠하이저 MX400처럼 잘라 치는 저음이라던가, 뱅 앤 올룹슨 A8같이 고음을 잡아끌어올려 띄워주는 강렬한 개성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게 소니가 할 줄 몰라서 그러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소니는 E888 같은 고음 끝판왕을 만든 경험도 있거든요.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닙니다. 전략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그 전략의 결과 소니는 이어폰/헤드폰의 포트폴리오를 싹 갈아치웁니다. 결과적으로 소니 이어폰은 뭘 집어도 평타는 칩니다. 고음이든 저음이든 발라드든 재즈든 락이든 어떤 전장에서도 싸워나갈 수 있죠. 

3. 예전에 MP3 전용기 시절에는 이어폰/헤드폰을 살 때 고민을 많이 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기기마다 세팅된 음색이 전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MP3플레이어로 듣는 음악은 원래 데이터에 담겨있던 음악이 아닙니다. 그 자체는 굉장히 밋밋합니다. 그래서 당시 업체에게는 이 음악을 어떻게 착색해서 내는지가 중요했습니다. 그 와중에 본인들이 코덱을 개발해야 라이선스 비용을 아낄 수 있으니 기기간에 개성이 강해져 버렸죠.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착색된 음악을 내주는 기기를 사고, 이를 잘 활용해주는 이어폰/헤드폰을 구매했습니다. 

소니는 어땠을까요? 처음에 소니는 정말 소니 다웠습니다. 아예 특성을 지닌 여러 가지 기기를 다 내놓고 성향에 따라 고르게 했어요.  문제는 시장이 변했다는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장이 두 갈래로 나뉘었어요. 

 

하나는 고음질/원음 위주의 시장입니다. 무압축 음원을 재생할 수 있는 아스텔 앤 컨의 전용기가 한국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다 못해 광풍을 일으키고, 후발주자가 잇다라 백만 원대의 전용기를 출시했죠. 물론 소니도 Hi-Res 제품을 출시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정말 최고인데 가격도 최고....) 

 

또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 <새로운 시장>입니다. 맨 위에서 적었듯 좀 오래된 세대들은 기기를 최대한 활용해서 좋은 음질을 뽑는데서 만족을 느낍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음악에 어떻게 몰입할 수 있는지, 그 환경이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다들 스마트폰을 쓰거든요. 그래서 기기 성향이고 뭐고 자주 가지고 노는 스마트폰을 통해서  음악을 듣는 게 제일 중요해요. 5.1 채널 유저에게 블루투스 스피커는 사도입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집에서 블루투스 스피커에 핸드폰을 물리고 음악을 들어요. 이건 요즘 주류 세대의 트렌드이자 생활입니다. 

그리고 이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소니코리아에서 한국시장에 맞춰서 엄청난 대수술을 할 때 다른 기기는 다 한국에 안 들어왔지만 이어폰/헤드폰은 거의 전종이 한국에 들어왔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질문, 스마트폰의 블루투스 코덱인 LDAC를 만든 게 어딘지 아시나요? 바로 소니입니다. 거의 모든 오레오 (2015년) 이후 안드로이드 폰에는 블루투스 오디오 모듈로 LDAC가 들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블루투스를 활용한 음악 환경에서 제일 활약할 수 있는 기업도 소니 겠죠. 

 

저 Hi-Res가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소니는 구글에 LDAC를 무료로 제공하는 신의 한 수를 둡니다. 정말 신의 한수인 게 구글에게서는 돈을 못 받지만 블루투스 오디오(스피커, 이어폰, 헤드폰)류는 소니에게 라이선스비를 내야 하거든요. 이렇게 무선 시장을 넘어 우리의 일상 경험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렇게 소니는 시장이 기술에서 소비자 경험으로 옮겨갔다는 걸 알아챘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장에서 어떻게 활약할지를 보여줘야겠지요.  

 


몰입의 즐거움, WH-1000 MX3 
전용기가 있던 시절에는 의외로 번들로 주어지는 이어폰을 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음악 경험이 거의 스마트폰 중심으로 천하평정이 되자 오히려 사람들은 음악 경험을 중시하게 되었고 마니아가 아닌 일반 소비자들이 고가 제품에도 지갑을 열게 되어버렸죠. 

 

지금 음악/소리 제품 트렌드는 기술이 아니라
얼마나 소비자가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소니가 다른 건 다 한국에 안 들여와도 이어폰류는 빠짐없이 들여오는 거겠죠. 음악 경험 중시라는 점에서도 LDAC코덱이 점령한 한국의 음악 감상 환경이라는 점에서도 소니는 경쟁력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WH-1000MX3을 리뷰하게 되었습니다만... 요게 참 신기합니다. 소니 기기만 30개 써본 입장에선 더욱 그렇네요. 소리도 소리지만 음악에 몰입하게 됩니다.

다음에는 이지은 씨... 가 아니라 노이즈 캔슬링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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